CEO로 가는 7가지 성공의 법칙
point이      름 : 운영자 point작 성 일 : 2011-04-13 point조 회 수 : 4555
CEO로 가는 7가지 성공법칙(하)/ CEO들의 사원 시절..꿈 꾸는자 이루리라 등

[편집자주]머니투데이는 2001년 오프라인 신문 창간 당시부터 기업 일선에서 땀흘리고 있는 최고경영자(CEO)들의 열정과 꿈을 지면에 담아왔습니다.

기업 CEO들은 각자 분야에서 남다른 노력으로 현재의 자리까지 올랐습니다. 하지만 그들에게도 불안한 미래에 대해 고민하던 사회 초년병 시절이 있었습니다. '햇병아리' 시절에서 간부를 거쳐 경영자로 성장하는 과정에서 CEO들이 어떤 마음가짐과 행동방식으로 살아왔는지에 대해 2회에 걸쳐 소개합니다.

CEO들이 가진 긍정적인 삶의 방식에서 평범하지만 특별한 '성공의 해법'을 체득하시기 바랍니다.

  [CEO로 가는 7가지 성공법칙]

- 배우는 자에게 미래가 있다
- 안주하지 말고 항상 도전하라
- 일 자체에 충실하라
- 꿈꾸는 자 이루리라
- 세상에 독불장군은 없다
- 한 우물을 파라
- 궂은 자리를 마다하지 마라  

▶ 꿈꾸는 자 이루리라
열정적이고 활동적인 사람들의 특징은 꿈을 쫓는다는 데 있다. 오랫동안 꿈을 그리는 사람은 그 꿈에 점점 닮아간다. 괴테는 "꿈을 계속 간직하고 있으면 반드시 실현할 때가 온다"고 했다. 최고의 자리에 오르위해 가장 먼저 해야 할 일은 최고의 자리를 '꿈꾸는 것'이다. 꿈 꾸는 자, 그 꿈을 포기하지 않는자, 결국 그 꿈을 이뤄낸다.

덴마크에 본사를 둔 한국그런포스펌프의 이강호 사장은 CEO 중에서는 특이하게도 육군사관학교 출신이다. 그것도 아주 잘 나가가는 대표 화랑을 지냈다. "저의 꿈은 육군 참모총장이 되는 것이었습니다. 지금은 다른 길을 가고 있지만 궁극적으로 전세계를 다니고 싶었던 꿈은 이룬 셈입니다."
 
이 사장은 육사 졸업후 엘리트 코스를 밟았지만 사정상 대위 시절 군복을 벗고 민간기업에 취직했다. 인생의 중요한 고비에서 군이라는 특수사회를 벗어났지만 그는 자신이 맡은 일에서 최선을 다하면서 새로운 환경에 적응해갔다.
 
"저는 군에 있을 때에도 해외 무관 생활을 목표로 어학공부를 열심히 해두었습니다. 전세계를 누비고 싶은 욕망이 있었기 때문입니다." 그는 국제적인 세일즈맨으로서 두각을 나타내면서 자신의 기량을 마음껏 발휘했다. 탁월한 외국어 실력과 강인한 체력, 맡은 일에 대한 강한 책임감 등은 그가 비즈니스맨으로 다시 태어날 수 있는 원천적인 힘이 됐다.

"30대 시절 10년 동안은 매년 6개월씩 셀 수도 없이 해외를 다니면서 보낸 시기입니다." 이 사장은 군에서 떨치지 못했던 호연지기를 세계 무대에서 마음껏 발휘한 셈이다.

MP3와 PMP 시장에서 안정적인 성장을 하고 있는 박남규 코원시스템 사장. 서울대 제어계측공학과 석사 출신으로 LG전자 연구원을 지냈던 박 사장은 31세의 젊은 나이에 코원시스템을 설립했다. 그렇게 일찍 창업을 결행한 배짱과 용기는 어디서 나왔을까.

"대학 시절부터 일찌감치 미국의 애플사나 HP사처럼 기술을 기반으로 하는 사업을 일구고 싶다는 꿈을 꾸기 시작했습니다. 비록 자금은 없지만 기술만큼은 자신 있었습니다."

박 사장은 그 꿈과 비전을 현재 미국법인 대표를 맡고 있는 대학 동창생인 정재욱 사장과 공유했다. 궁극적으로 가야할 방향은 멀티미디어 사업으로 설정했지만 초기에는 돈이 많이 들지 않는 소프트웨어 사업으로 시작했다.

창업 당시 투자한 돈은 직장생활 하면서 모아둔 돈 2000만원이 전부였다. 그 돈도 대부분 사무실 얻는데 쓰고 집에서 사용하던 컴퓨터와 기타 장비로 사업을 시작했다. 실패에 대한 두려움은 없었을까. "일단 최선을 다하고 결과는 하늘에 맡긴다는 느긋함이 제 성격의 장점"이라며 답을 대신했다.
 
▶ 세상에 독불장군은 없다
CEO가 되기까지는 많은 사람들의 도움이 필요하다. 선·후배 동료들의 지지와 존경이 필수적이다. 그러기 위해서는 겸손해야 하고 다른 이에 대한 배려심이 있어야 한다. "물은 산꼭대기에 머물지 않고 계곡을 따라 아래로 흘러간다." 탈무드에 나오는 말이다. 낮은 곳으로 흐르는 강은 그렇게 모든 골짜기의 물을 담아낸다. 마찬가지로 신은 독불장군이 아닌 겸손하고 친절한 자에게 최후의 성공을 허락한다.

윤윤수 휠라코리아 회장은 누구를 존경하느냐는 질문을 받으면 스스럼없이 `아내`라고 이야기한다. "그 어떤 상황에서도 나를 몰아세운 일이 없죠. 살아오면서 11번 이사하는 동안 나는 한번도 집에 없었어요. 지금 내가 성공했다면 그건 모두 아내덕입니다."
 
사회적으로 성공한 남자에게 배우자의 역할이 없을 수 없을 것이다. 그것이 아내의 희생이든, 아니면 끝까지 믿어주고 이해해주는 배려심이든 말이다. 윤 회장에게 '아내'라는 이름은 각별한 듯 했다.
 
"어릴 적 어머니 사랑을 받고 자라지 못해 항상 마음이 허전했죠. 그리고 학교 실패하고 그랬으니 얼마나 스트레스가 많고 외로웠겠습니까?" 운영하던 회사에 노사분규발생으로 어려웠던 88년, 답답한 마음에 친구들과 점을 보러 갔더니 점쟁이가 "당신은 아내를 잘 만나 성공할 것"이라고 말하더라는 이야기를 하면서 윤회장은 소탈한 웃음을 지었다.

넌버벌 퍼포먼스`난타`로 세계 공연계를 깜짝 놀라게 한 송승환 (주)PMC 대표. 그는 좋은 친구가 있었기 때문에 성공할 수 있었다고 강조했다. PMC 의 이광호 공동대표가 바로 그 친구다. 이광호 공동대표는 충남방적 창업주의 아들로 경영학 박사학위를 소지하고 있다. 두 사람은 휘문고 동기 동창이다. 동업이 깨지지 않고 시너지 효과를 내는 독특한 회사가 PMC다.
 
"저는 그런 점에서 참 운이 좋은 사람입니다. 저는 회계장부를 들여다보지 않구요, 이 친구는 연극 연출이나 기획에는 간섭하지 않습니다. 같은 분야였다면 동업이 깨졌을 거예요." 에딘버러에 출품하러 갈 때 비용이 모자라서 쩔쩔 맬때에도 친구들이 십시일반 도움을 줬다.
 
▶ 한 우물을 파라
"한 가지 목표를 버리지 않고 지켜 나간다면 반드시 싹이 틀 때가 온다. 사람이 성공하지 못하는 것은 처음부터 끝까지 한길로 나가지 않았기 때문이지 성공의 길이 험악해서가 아니다." 영국의 정치가 디즈레일리의 말이다. CEO들은 연봉이나 직위보다는 자신이 좋아하고 잘 할 수 있는 분야에서 오랫동안 한 우물을 팠다. 그 속에서 세상의 변화를 읽어내고 위기에 대응하는 지혜를 닦았다.

이계웅 할리데이비슨코리아 사장은 종합상사인 (주)대우에 근무하던 36세에 창업을 꿈꿨다. `내가 진정으로 좋아하고 늙어도 즐길수 있는 일을 하자'고 결심한 그는 모터사이클 사업에 뛰어들기로 했다. 먼저 회사를 설득했으나 쉽지는 않았다.

미국 할리데이비슨 본사에 사업 제안서를 내고 부지런히 전화도 했다. 2년여에 걸친 설득과 협상 끝에 1999년 할리데이비슨코리아가 출범했다."창업을 결심할 당시 집안에 돈이 있어서 시작한 것은 아닙니다. 다만 창업을 결행할 수 있었던 밑천이라면 어려서부터 모터사이클이 제 생활의 일부였다는 것입니다." 모터사이클 매니아였던 아버지의 영향도 컸다. 남미 볼리비아에서 고등학교를 다니던 시절에는 모터사이클을 타고 안데스산맥을 넘기까지 했다.
 
"외환위기로 어수선하던 시절이라 수입차 시장이 얼어붙어 있었죠. 그런데 3000만원대 모터사이클을 팔겠다고 나섰으니 주위에서 말리는 것은 당연했습니다. 그러나 저는 경제위기는 극복될 것이고, 개인의 삶과 개성을 중시하는 사람들이 늘어날 것으로 확신했습니다."

웅진출판의 김준희 대표는 출판교육 분야에서는 보기 드물게 운동권 경력을 지닌 최고경영자(CEO)다. 서울대 법대 재학 시절 유신헌법 반대시위로 구속된 전력 때문에 취업에 거듭 실패하다 당시 웅진출판에 입사했다.
 
"적어도 후배들 앞에서 했던 말에 대해 신의를 지키고 싶어 대학 4학년때까지도 데모는 했습니다. 그러나 한편으로는 홀어머니를 모시는 외아들로서 다른 길을 가야지 하는 고민을 하고 있었습니다." 어렵게 웅진출판에 입사한 지 20년만에 대표이사에 오른 그는 성실함과 승부근성을 무기로 평균 2년마다 사내 주요보직을 두루 거치면서 출판전문 경영자로서의 자질과 경험을 쌓았다.

▶ 궂은 자리를 마다하지 마라
어느 조직이나 다 마찬가지다. 편하거나 생색나는 일이 있는 반면, 힘들고 노력한 티 안나는 궂은 일도 많다. CEO들은 모두가 원하는 편한 일보다는 어렵고 험한 일을 맡았다. 이를 통해 조직의 믿음을 얻었고, 능력을 선보일 기회를 얻었다.

문국현 유한킴벌리 사장은 자신의 경영자적 삶에 가장 큰 영향을 끼친 인물로 유한양행 창업자인 고 유일한 박사를 꼽는다. "유 박사님이 하신 말씀이 있습니다. '리더는 자기의 머리로 남의 행복을 생각하는 사람이다. 그래서 자기를 버려야 한다`고 말입니다. 종업원 지주제를 최초로 실시하고 전재산을 사회에 환원하는 모습을 보면서 유 박사로부터 개혁가적인 기질을 배웠다고 할 수 있을 것입니다."
 
문 사장의 부드럽고 온화한 미소속에는 강한 원칙과 실천력이 감춰져 있다. "저는 그동안 환경운동도 했지만 사내민주화운동이나 경영혁신운동도 했습니다. '판공비 쓰지 말자` '술접대, 골프접대 하지 말자`는 등의 주장을 펴서 회사내에서 '눈엣 가시` 같은 존재로 비쳐졌던 적이 많습니다."
 
부당한 관행에 대해 도전하며 살았던 30년 세월이 그리 편하지만은 않았던 것 같다고 문 사장은 담담히 회고했다. 문 사장의 마지막 말이 인상적이었다. "더 쉽게 사는 방법을 택했더라면 제 인생은 발전하지 않았을 것이라는 생각을 해봅니다."

`호텔업계의 대부'로 불리며 신라호텔 최고경영자(CEO)에서 부산파라다이스호텔 경영자로 변신한 이영일 사장. 서울대 공대 출신으로 삼성그룹에 입사해 신라호텔 건설사업부에서 엔지니어로 직장생활을 시작했던 그는 어떻게 해서 호텔맨으로 변신했을까.
 
"호텔 공사를 진행하던 중 가구.비품을 담당하면서 엔진니어에서 호텔맨으로 갑자기 진로가 바뀌었습니다. 당시에는 갈등도 많이 했지만 세월이 흐르니 엔지니어가 되는 것보다 더 행복한 삶을 살았다는 생각이 듭니다."
 
그런 이 사장도 전공을 바꾸고 나서 후회한 적이 있다고 소개했다. "4년 동안 판촉실장을 맡아 매일 7곳씩 세일즈를 하느라 고객을 만나 머리를 숙이면서 세일즈가 이렇게 어려운 것인가를 알았습니다. 자존심도 많이 상했지만 객실율을 30%에서 85%까지 끌어올렸을 때는 보람도 느꼈죠."
 
이후 총무, 구매, 기획, 신규사업 담당 등 1년도 안 돼 자리를 이동했다. "사실은 회사가 경영자로 키우려고 한 것인데 그 이유를 몰라 회사 원망도 많이 하고 섭섭해하기도 했습니다. 지금 돌아보면 다양한 경험을 하게 된 것이 CEO가 되는데 밑거름이 됐다고 생각합니다."

김상갑 한국남부발전 사장은 서울법대를 졸업한 뒤 1977년 한국중공업에 사원으로 입사해 공채 출신 첫 CEO가 되어 화제를 모았다. 김 사장은 외모에서 풍기는 것 처럼 부드럽고 합리적이라는 평가를 받는 CEO다. 그러나 때로는 조직의 이익을 위해서 자신의 인사상 불이익도 마다하지 않았다고 했다.
 
한국중공업이 민영화되는 과정에서 그같은 태도가 CEO로 발탁되는 데 도움이 됐다. 두산그룹이 한국중공업을 인수하면서 외부 전문 컨설팅회사의 도움을 받아 사장감을 물색하느라 직원을 상대로 설문조사를 하자 직원들이 적극적으로 김 사장을 추천했던 것이다
 
"한국중공업 시절에는 이른 바 '낙하산 사장`들이 많았습니다. 그분들은 임명자를 의식해서 '한건주의` 내지는 단기실적에 급급하는 모습을 보였습니다. 기획이사 시절 윗사람들이 추진하는 일을 반대하다 보니 승진에서 누락되기도 하고 보직변경되는 시련을 겪기도 했습니다."
 
김 사장의 이같은 처신에 윗사람들은 노골적으로 싫은 기색을 보였지만 부하 직원들은 전폭적인 신뢰를 보이며 따랐다. 사심없이 일하는 모습 때문이었다.

출처: 머니투데이 박응식,박창욱 기자 | 06/25 12:37 | 조회 20203
  • search_list
  • print

num subject cat date click
28 희망 - Hope 운영자 2011.04.13 4463
27 성공하려면 선택과 집중하라 운영자 2011.04.13 4362
» CEO로 가는 7가지 성공의 법칙 운영자 2011.04.13 4555
25 잘나갈수록 위기를 생각하라 운영자 2011.04.13 4398
24 3000명 인맥 만드는 비법은 운영자 2011.04.13 4628